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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석목사

질문들 (주일예배)

by coixn on Feb 0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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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성경은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가리킨다.

그런데 그 진리를 가르침에 있어서 성경은 질문을 사용하기도 한다.

성경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말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질문에 대하여 바르게 답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한다.

그것은 첫째로 질문은 아무에게나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질문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질문을 받았다고 하나, 바르게 답을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역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이해 못하고 오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 말씀에서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라는 질문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풀어지는(녹아버리는, 혹은 파괴되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전제를 무시하거나 이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이 아니다.

, 베드로 후서에 언급된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아니다.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것은 성경 전체로 보아도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마치 돼지에게 진주이며 거룩한 것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다.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그리고 반대로 그들의 질문에 바른 답을 한다고 할 지라도 그들은 질문에 대한 답을 신뢰하지 않거나 혹은 알면서도 회피한다.

 

8: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의 진실한 대답을 그들은 수용할 수 없었다. 바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람 중에서 위대한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이것은 그 당시 하나님을 가장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26: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그들의 생각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과 맞으면 고려해보겠다는 것과 같다.

그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에게 바른 답을 해주어도 그들 스스로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돼지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었다.

이에 반하여 베드로는 그들의 심문 앞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뜻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이다.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맞추는 것은 우리는 자기부인(否認)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온다면 그들에게도 이 질문이 적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질문은 주님을 아는 사람,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이다.

그들은 베드로후서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벧후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이 질문은 주님을 아는 사람이 답을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주님을 아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질문했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만의 틀에 갇히거나 우리들의 선입관에 갇히는 것을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의 질문은 더 중요하다.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가 주님을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반드시 구해야 하는 답이며,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답이며, 그 답에 맞추어서 살아야 하는 답이다.

우리가 수학 공식이라던지, 시사 상식, 영어 등은 모르면 불편하거나 차별이나 무시를 받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영원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힘으로는 영원히 알아 낼 수 없다.

베드로의 경우에도 그가 수제자라서 예수님 곁에서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활하고 주님의 기적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안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은 비밀을 말씀하셨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가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예수님의 질문은 한 가지 즉, 하나님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이 일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10: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실제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미 사람들에게 알게 했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베드로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며 예수님을 단순한 사람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다.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질문을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위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것과는 다른 것은 그 질문에 올바르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울이 다메섹에서 질문한 것이다.

그에게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니었다.

26: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다.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물었다.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는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았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예수님을 만날 때이다.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실체를 선포하였다.

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우리가 예수님의 질문에 바른 대답을 한다면, 엘리야의 질문과 여호수아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 질문들은 본질상 하나이다. 편의상 순서를 나누어 본 것 뿐이다.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의 이 말은 결단을 촉구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올바른 것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다.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엘리야가 불을 내림으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비로소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확증이었다.

엘리야의 강조점은 하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날 것을 권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그들의 본성에 맡겨두면 된다. 하나님 스스로 숨기시고, 엘리야가 그저 숨어 지내면 사람들은 알아서 바알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수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됨을 알 수 있다.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호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31: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우리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인도하시고,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3:5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결론적으로

벧후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오늘은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하여 생각을 했다.

오늘 말씀의 질문인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라는 질문은 아무에게나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 질문은 그리스도를 아는 자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심판을 아는 자에게만 묻는 질문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위의 질문은 그저 말장난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았다.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이 진리이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 행동과 사랑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엘리야의 요구대로, 그 분을 따라야 하고, 여호수아의 다짐대로 그 분을 섬겨야 한다.

섬기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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