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주일예배)
벧후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조롱하는 자들은 강림이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을 한다. 그 예로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을 한다.
그런데 그들의 정체는 베드로 후서의 앞 부분에서 이미 언급을 했다.
벧후2: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그들은 속이고 있는 자임을 증명했다. 2:19 말씀에서 ‘준다 하여도’는 다른 말로 번역하면 약속하여도라고 번역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들의 실상은 주인이 아니라 종의 신분이기에 어떠한 약속도 이행할 수 없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 인 것이다.
그러한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은 없다라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재림은 성경말씀들에 있고 특히 예수님께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마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믿음의 근원은 바로 약속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도수표를 남발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분이 말씀은 곧 우리들과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실언을 하시거나 농담을 하지 않으신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약속은 상대방을 신뢰함으로 맺어진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들의 약속은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일방적이라는 것은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먼저 지키셨다는 의미이다. 특히 구원의 약속인 경우, 우리와 하나님은 서로의 관계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주셨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셨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오심에 대한 소망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그들의 행동과 무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선포였다.
하나님이 그들과 약속을 맺음에 있어서, 그들의 행동을 보고 약속을 주시거나 갱신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이다.
이것은 간혹 사람들이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기억하심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약속에 대한 이행이라는 부분에서 노력하는 쪽은 인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아담의 아들인 가인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심했다. 그들의 후손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인과 다른, 아담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기억한 것은 세월이 지난 후였다.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은 노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전히 아담이 저지른 범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창6: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메시야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갈수록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고자 했다.
소위 말하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다시금 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들은 반역했다.
그들은 시날 평원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여 탑을 쌓았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그리고 천년이 훌쩍 넘긴 세월도 하나님에 대한 반항을 그치지 않았다.
사사기의 말씀을 특징짓는 두 구절의 말씀이 있다.
삿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사람을 거두지 않았다.
사사 시대가 끝나고 통일왕국시대가 지나 분열왕국의 시대가 되었지만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반항은 여전했다.
남 유다의 선지자였던 이사야는 그 시대를 이렇게 말했다.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러면서도 이사야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함께 전하였다.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예레미야를 통한 멸망의 예언에도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다.
렘44: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이방의 신이었던 하늘의 여왕을 섬길 때가 더 좋았다며 자신들의 죄에 대한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렘44: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그들의 멸망임을 하나님의 말씀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결국 멸망을 당했고 70년의 포로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70년 후에 그들은 다시금 나라를 회복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에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있다.
말2: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하나님은 마침내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우리의 행동에 그의 사랑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은혜에 의하여 사랑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일방적인 사랑의 약속을 잘 보여주는 예가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한 가지 약속을 맺었다.
그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창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이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겠습니까라고 질문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15: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 제물들을 준비했다.
해 질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시금 만나셨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과 그 후에 그들이 그 나라에서 나올 것을 말씀하셨다. 바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며, 애굽의 종이었다가 출애굽 해서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셨다.
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이와 더불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보통 언약을 세울 때는 언약의 당사자들이 쪼갠 고기 사이로 같이 지나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언약을 깨뜨릴 때에 이 쪼갠 고기들과 같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움에도 불구하고 같이 지나가신 것이 아니라 혼자 지나가셨다.
아브라함의 연약함을 아시고 계셨기 때문이다. 만약에 아브라함과 같이 지나가셨다면 아브라함은 얼마 가지 못하여 죽은 목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지 얼마 후에 다음과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창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하나님은 사래를 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아브라함은 이 실패를 교훈삼아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더욱더 굳건히 할 수 있었다.
하나님과 야곱과의 약속도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고 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가는 도중 벧엘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러한 약속을 하셨다.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의 경우 복이 아니라 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을 선포하셨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일방적인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지금도 이행하고 계신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결론적으로
벧후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디있느냐라고 비웃었지만, 하나님은 말씀으로 확실함을 보여 주셨다.
말씀, 우리는 성경을 구약, 신약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약속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성경에 그의 약속을 적어주셨다. 우리는 그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우리와 협상을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방적인 은혜를 주셨다.
그 은혜는 우리가 무엇이 되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은혜를 주심으로 우리를 그 은혜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롬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은혜와 약속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그 은혜를 받기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가고 가신다. 아니 이미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약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열정으로 순종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답게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번호 | 카테고리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1634 | 정용석목사 | 듣고자 하니 (수요예배) | 2011.09.14 | 493 | |
| 1633 | 정용석목사 |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일예배) | 2011.09.11 | 493 | |
| 1632 | 정용석목사 | 주의 이름 (금요기도회) | 2011.09.09 | 521 | |
| 1631 | 정용석목사 | 인정認定 (수요예배) | 2011.09.07 | 509 | |
| » | 정용석목사 | 약속 (주일예배) | 2011.09.04 | 555 | |
| 1629 | 정용석목사 | 이름 (금요기도회) | 2011.09.02 | 5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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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7 | 정용석목사 | 강림2 (주일예배) | 2011.08.28 | 587 | |
| 1626 | 정용석목사 | 영원 (금요기도회) | 2011.08.26 | 58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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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0 | 정용석목사 | 우리의 하나님 (금요기도회) | 2011.08.12 | 58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