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느2:10)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에게 허락을 받고 또한 많은 물품을 지원받고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었다.
예루살렘으로 오게 된 것을 알게된 일부의 사람들은 근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느헤미야라는 사람을 부담스러워하였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일에(느2:10,11)
느헤미야는 술관원, 즉 왕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방해를 하였지만, 그 역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이일을 진행하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6:15,16)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방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을 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이 고난을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의지함으로 이 일을 극복해 가고 있었다.
느헤미야의 기도하는 모습을 느헤미야서에서 발견을 할 수 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방해가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대적 마귀는 하나님의 일이 완성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또한 죄인들 역시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2-44)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미움은 이렇게 표현이 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미워할 때 우리들이 미워하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2-14)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은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가게 만든다.
무엇인가 편안하면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은데 우리들의 경험상 알고 있다. 하나님을 믿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진리이다.
편안한 환경에서 성공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들의 특징은 역경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도도새라는 새가 있었다.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던 새였다. 그곳은 천적도 없었고 도도새가 살기 너무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1505년 포루투갈에 의해 발견되고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자 1681년에 멸종을 당했다고 한다.
이것은 도도새뿐만 아니라 편안에 익숙하면 허약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황하강과 양쯔강 중에서 살기 좋은 쪽은 양쯔강이다. 하지만, 세계4대문명의 중의 하나는 양쯔강이 아니라 황하강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항상 우리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가져야할 확신은 하나님이 이일을 주도해 가신다는 것이다.
간혹 주님의 일에 악이 승리한 것처럼 보일때가 있다. 사단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을 때 자신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큰 선물을 준비하셨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그의 인생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회개를 통하여 다윗을 더 크게 사용하셨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다면 망할 수 밖에 없고 진노를 당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는 방도로 삼으셨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0,21)
그렇다고 죄를 지으라는 말이 아니다. 죄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다.
죄를 짓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패배한 것처럼 보인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마27:42,43)
사람들은 십자가를 벗어나는 것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역사를 완성하셨다.
십자가는 지금도 이슬람교에 복음을 증거할 때 걸림돌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하나님(알라)가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을 버리거나 외면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승리를 하셨다.
좌절과 절망과 탄식 속에서 하나님은 승리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8-11)
하나님의 일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모든 일은 그냥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관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모든 것이 축복이며 은혜이다.
지금 당장은 그것이 우리들을 괴롭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사랑하고 계시며, 사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의 생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2,3)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1,12)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때 항상 우리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가져야할 확신은 하나님이 이일을 주도해 가신다는 것이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