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은 고도의 기술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점점 더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공상과학에 속하던 기술들이 어느새 상용화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핸드폰이라고 부르는 셀룰러폰만 해도 그렇다. 007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형핸드폰을 우리가 들고 다니고 있다. 꿈같은 이야기다. 말 그대로 하이테크(high-tech)의 시대이다. 교회교육에도 하이테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체의 활용이다. 교회들마다 하이테크시대를 따라가느라 야단이다. 빔 프로젝트를 설치한다,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화상예배를 드린다 여기 저기 정신이 없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뒤늦게라도 따라가야 할 일이기에 좀 요란하고 야단스럽더라도 참아가면서 하이테크의 도입은 더 늦출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고도의 기술(high-technology)이 교회교육을 다 해결해 주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사회는 하이테크의 발달이 좌우한다. 하이테크의 발달만큼 미래사회는 변해갈 것이다. 하지만 미래학자들이 또 하나 지적하는 것이 있다. 하이테크와 함께 하이터치(high-touch)가 요청된다는 점이다. 하이테크에 시달리고 지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이터치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의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동시에 고도의 감성과 영성을 찾게 된다. 지금 그리고 미래는 과학의 시대이면서 영성의 시대가 이다. 하이터치없는 하이테크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메마르게 만들고 기계적이고 사무적이 되도록 만든다. 하이터치가 없는 하이테크는 인간성의 파멸을 불러온다.
그렇다. 하이테크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아이들은 그만큼 하이터치를 바란다. 아이들은 섬세한 터치를 기대한다. 그래서 이메일을 받고 싶어하고 문자메시지를 받고 싶어한다.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에 감동하고 엽서 한 장에도 감격한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하이테크의 가르침이기보다 하이터치의 사랑, 하이터치의 관심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터치하고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감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교회교육이다. 지금은 하이테크의 교사보다는 하이터치의 교사가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