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앞 산에 오를 때 마다 2리터 들이 물병 서너개를 가지고 오른다. 등산의 의미는 작지만, 잠시 신선한 공기 좀 채우고, 좁은 뇌에 산소로 공간좀 늘리고, 부실한 다리좀 튼튼해고, 좋은 물좀 먹을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에 숨이 턱하고 막히면서 온몸에 뒤틀린다. 담배 연기 때문이다.
소리: 아저씨~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어떡 합니까?
대답: 그 사람 참 까다로운 사람일세<힐끗 거리면서 내려간다>
겨우 마음을 안정 시키고 약수터에 다다르게 되면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것이 예사인데 장마철부터는 세균에 대한 공포때문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물줄기가 세차다. 흘러버린 물이 아까운 마음이 들지만, 이런 좋은 물이 하천으로 흘러가면 하천도 덩달아 맑아지리라는 마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려는데, 어떤 남자가 물이 나오는 꼭지에 대고 머리를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리: 아저씨! 여기서 머리를 감으면 어떡합니까?
대답: 왜 그냥 흘러보내기 아까와서요.
소리: 머리를 감거나 세면을 하면 오염이 빠르게 됩니다.
대답: 그 양반, 참 까다로운 사람이네<투덜 대면서 사라진다>
요즘, 서울에서는 정류장 마다 금연 구역을 정해서 시범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흡연가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여전히 길거리, 공공장소에는 담배꽁초가 즐비하고, 가래침 흔적이 여실하다. 강남에서야 어디 쉽게 어기겠는가마는 그외의 지역은 참으로 더럽기가 장관이다. 의정부 터미널의 화장실은 70년대 화장실을 방불케 한다. 강제, 벌금 등도 효력이 없다.
불법천지, 곧 이 세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불법천지를 만드는데 한 몫 단단히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불법 소프트웨어와 활용과 불법 다운로드에 아무런 저항감이 없다. 오히려 세상이 하는대로 하는 것이기에 정당하다고 우긴다.
요즈음 가짜 학력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그 당사자들 중에 상당수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속에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져 있다.
우리는 보이는 약속보다 더 탁월한 보이지 않는 약속으로 훈련된 언약백성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약속은 생명처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보다는 '약속은 깨기지기 위해 있다'라고 하는 무책임한 세상의 논리에 익숙해 져 가고 있다면?
세상소리:그리스도인들이 왜 저래
그리스도인의 답: 그 사람들 참 까다롭네<쪽팔리는 듯이 도망치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세상에서 존재하는 이유가 없어지고, 보이는 것에 대한 누림은 물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대한 누림도 없을 것이라는 소심한 마음이 드는 것이 정말 불필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