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22:32)
김목사님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세월이 빨리 흐름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신앙은 아시다시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김목사님은 지금 뭘하고 계실까라는 물음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우리나 김목사님이나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마22:23)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난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이다. 사두개인들이란 사독 제사장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로서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은 모세는 인정을 했지만, 천사, 영, 부활 등을 부정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러 나왔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나온 것이다.
우리들이 예수님께 대하는 태도는 두가지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든지, 아니면 예수님과 나와는 상관이 없는 자로 여기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결국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 아니라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 분은 내가 본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예배해야 하는 대상이다.
사두개인들은 이상한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
이상한 질문이라고 한 것은 사람에 대한 긍휼이나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잔인한 문제를 가지고 자신들의 이론을 합리화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7형제가 있는데 결혼을 했고, 아내가 있는데 차례 차례죽었다는 말이다.
신 25:5-6
5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들은 부활이 있다면 누구의 아내일까라고 물었다.
그들 역시 답은 없기 때문에 부활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22:29-32)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음을 알게 하셨다. 그리고 성경의 말씀도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납득시키지 않는다면 성경이 틀린 것으로 생각을 했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가 모든 성경을 제대로 해석했기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앞으로도 난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경은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진리 임을 때가 되면 스스로를 증명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지 못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성경은 항상 믿을 만한 것이었다.
우리가 영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좁은 소견으로 길게 늘어지는 삶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2,3)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른 답을 준다.
이것을 머리로 받아 들이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 경험을 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영생을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예수님은 그 가치를 분명히 알고 계셨다는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1,12)
우리들은 신앙 생활에서 성장을 해야 한다.
신앙 생활에서 성장이란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말하며,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이 지금 알고 있는,혹은 우리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의 전체 능력과 속성에 비하면 그야 말로 새발의 피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아는 적은(작은) 하나님으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남은 삶과 남아 있는 일들을 판단하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분이시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들의 머리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목사님을 갑자기 데리고 가시는 것이라든지, 또한 우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회현상들이 있다. 우리들은 왜 그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주목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까에 주목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겸손하라고 우리들에게 권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교만은 자기 자랑이 아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며 교만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들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겸손히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지켜 보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이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다.
성경은 우리들을 여러 가지로 부른다.
그 중의 하나가 나그네이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7-19)
나그네는 거처가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돌아갈 고향 혹은 본향이 있는 자들이다.
우리들 역시 이곳이 우리들의 거처가 아니라 우리들은 잠시 이 땅에 온 것 뿐이다.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은 나그네로서의 삶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애착을 가지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죽어서만 하나님께 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산 자나 죽은 자가 똑같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산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천국은 죽을 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활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데 죽어서 하나님과 함께 하리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지금 동행하지 않는 하나님이 죽어서 동행하리라는 확신은 무모한 것이다.
지금 동행하는 하나님이 육체적 죽음이 후에도 동행하시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5:20)
결론적으로
우리나 김목사님이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은 동일하다.
똑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도 똑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믿을 수는 있다.
하나님이 믿음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영생을 선물로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동행하지 않는 하나님이 죽어서 동행하리라는 확신은 무모한 것이다.
지금 동행하는 하나님이 육체적 죽음이 후에도 동행하시는 것이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