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
우리들은 곧잘 어려움을 만난다.
이 어려움이 없이 사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어려움을 항상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려움이나, 고난이 없다면, 무엇인가 허전하기까지 하다.
어떤 사람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너무나 한가했다. 무료하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곳이 천국이 맞는가? 맞다면 왜 이렇게 심심한가라고 말이다.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곳은 지옥인데요...
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우리 인생에서 아무 일도 없이 계속된다거나, 심심한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고난을 스스로 즐기는 자는 없다.
현실은 크던 작던 우리들을 괴롭히는 문제들은 항상 존재한다.
문제가 없는 곳, 우리가 살면서 문제 없는 곳은 무덤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우리들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를 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위기는 위험한 기회의 준말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위기이다라는 말은 기회이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문제의 대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수학을 가르치면서 가끔 하는 말이지만, 문제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인데 답이 없는 것을 우리는 출제미스라고 부른다.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카네기의 행복론에 나오는 내용이다.
1)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라.
2) 불가피한 경우에는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3) 그런 뒤에 침착하게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라.
물론 우리들은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 도 있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오늘의 말씀을 그런 우리들에 대한 해답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 말씀은 시편 20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다윗의 시편이라고 부제가 붙어있다.
이 시편은 전쟁에 나가는 왕을 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로 볼 수 있다.
1-5절은 회중들이 왕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이다.
공동번역이나 표준 새번역은 “네게”라는 말을 왕 또는 임금님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한다.
시편 20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환난 날은 전쟁으로 생각을 하면 된다.
전쟁을 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병력의 강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가?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동화라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겪었고 지금고 겪고 있는 사실들이다.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들도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릴 필요가 없다.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살아계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누군지도 모르는 분에게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직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은 일이었다.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민13:26)
그들은 가나안땅에 대하여 알아보았지만, 두가지의 의견이 나왔다.
올라가자라는 것과 회군하자는 것이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민14:9)
12명중 10명은 올라가면 우리들은 죽는다이고 2명은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하시기에 우리들이 약속의 땅을 얻을 것이라고 했지만, 2명은 죽을 위기에 몰렸다.
그때 하나님은 나타나셨고 그들은 약속의 땅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배수진을 쳤다.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 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민14:40-43)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을 패배 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승리는 보장된 것이나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혹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지 행하지 않는가이지, 문제의 크고 작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문제는 우리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전쟁의 때, 환난의 날에 우리들이 찾아야 하는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는 그 시기가 바로 우리들에게 진정한 환난이 되는 것이다.
2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4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5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응답하기로 하셨다면 2-5절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조건을 보고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의 은혜와 긍휼로 응답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소원을 허락하시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들은 담대하게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것은 제외를 하는 것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
하나님은 모든 것을 구하라고 하셨다.
문제는 하나님외에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하늘을 목표로 살라, 그리하면 당신이 세상을 얻게 될 것이다. 세상을 목표로 살라, 그리하면 당신이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6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 응락하시리로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 승리가 보장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전쟁에 나가기 전 다윗은 승리를 확신하였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들의 문제를 말씀 드렸다면 더 이상 그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들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넘겨드렸음을 알아야 한다.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우리들은 자전거 뒤에 앉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인생에 개입하시는 것은 우리들의 모든 인생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들의 삶으로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한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끊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권리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38-40)
예수님을 모신 배는 풍랑을 만났을 수는 있으나 배가 침몰할 수는 없다.
7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우리들이 의지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외의 것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을 의지하지 않는다.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변화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변화거나 변심하지만 하나님은 변화하시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은 그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시편 23편1절에 이런 말이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신약성경의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하나님의 이름 중에는 목자되신 하나님이 있다.
우리들이 양이라고 하면 순종을 잘하거나, 목자를 잘 따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가복음 15장의 목자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눅15:2-4)
우리들이 간혹 하는 착각 중의 하나가 내가 잃어버린 저 한 마리의 양은 아니겠지라는 것이다. 나는 99마리 무리 중에 있을 것이라는 것과, 나는 탕자가 아니라 첫째 아들일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양이라도 순한 양, 즉 목자가 목숨을 걸 만한 양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목자가 목숨을 걸 만한 양이 아니라, 내쫓김을 당한다고 할 지라도 할 말이 없음을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목자가 되신 것이지, 나의 재능을 보고 나의 목자가 되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제자 삼으신 것 역시 그들의 재능을 보고 삼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제자삼으신 것이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막3:13-14)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은 의지할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다.
먼저 우리들에게 생각이 나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누구 누구 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교회가 오로지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을 때, 그때가 교회를 위해서는 가장 행복한 때이다.’이것이 강한 행복한 때라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 순간을 허락하실 것이며 우리들은 이것이 진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혹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지 행하지 않는가이지, 문제의 크고 작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문제는 우리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은 의지할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7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들의 문제를 말씀 드렸다면 더 이상 그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아뢰는 삶에서 우리가 변화 하는 삶 주께 드려진다 할 떄 참 그런 기다림의 그릇이 되지 못 하는것 같아요..문제의식을 기지고 그것을 기도하고 간구 하는것 어떻게하면 공동체와 함께 가는것일까? 그런 고민을 합니다